BST욥기강해 <1장: 의로운 욥과 하늘의 상급>

[해답? + 무고한 고난]


* 우리가 가진 기술주의적 사고방식은,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봄.

so, 해답을 요구하는 질문, 해결책을 요구하는 문제, 원인과 결과의 차원에서 삶을 보곤 함. 


우리는 일반적으로.. 일련의 '문제'목록을 작성하고, 그 원인을 밝힌 후, 상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한 해결책을 제시...해결책이 원칙상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근거하여 절차를 밟는다. (레슬리 뉴비긴, "1984년의 이면" 중)


그러나 인간의 삶에 해결책이 없는 문제들이 존재함을 깨달아야 함. 


* 욥의 친구들은 욥이 체험한 인간의 고통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들은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해결책을 원했다. 해답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신학적인 논리에 어긋나는 사실을 대면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의 신비에 기꺼이 직면하기보다는, 그것을 풀어야 하는 문제로만 다루기를 고집했다. (p.17)




[욥기의 패턴]


1. 상황이 설정되고 하늘과 땅의 실재가 나란히 대치되어 있는 산문적 서언(1-2장)

2. 욥과 그의 친구들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한 대화를 담은 긴 시(3장-42:6)

3. 1과 짝을 이뤄, 특별한 목적을 성취하면서 이 책을 결롡시는 산문체 후기(42:7-14)


* 저자: 알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야기꾼

* 기록시기: 또한 알 수 없음




[1. 하늘의 법정에서 일어난 일의 배후]


* 우리는 왜 하나님을 섬기는가?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사단의 조롱처럼 그를 섬길 "까닭이 있기 때문"인가?

- 비본질적: 누가 종교를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

- 본질적: 누가 자신의 신앙을 사용하기 보다는 그 종교로 살아가는(삶으로 실천하는) 경우


* 선과 악의 이원론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님. 영적 전쟁이 있으나, 그것이 동등한 세력 간의 사건이 아님을 기억해야 함. 하나님의 선하심과 갈등관계에 있는 동등하고 적대적인 악의 힘은 없음. 하나님은 언제나 주권적!!




[2. 믿음의 고난]


*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과 허용적인 뜻을구별할 필요가 있다. 타락 이편의 세상은 무너진 세상이다. 여전히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 뜻은 타락한 세상의 필요들을 통하여 굴절된 상태로 임하고 있다. 


* 욥의 믿음은 그의 고난을 경감시켜주지 못한다. 도리어 자신이 하나님에 관해 믿어왔던 것과 지금 그의 체험이 충돌(의로운 이를 돌보시는 하나님/자신이 만난 고난)하고 있다. 

사실상 고난은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에게만 문제가 된다. 

-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는가.

-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신가.

- 신앙이 지금 제공해줄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인가.




[3. 욥의 아내] 


* 욥의 아내는 그녀의 깊은 인간적인 감정이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 표현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보다는 선한 사람들이 화를 낼 수 있고 또 화를 낸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건전한 태도이다.




[4. 고통을 나누는 임재] 


* 욥의 친구들이 뒤에 대부분에서는 사태를 잘못 파악했지만, 처음에는 바르게 행하였다. 그들은 욜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조용히 함께 해주었다. 그들의 침묵은 말보다 더 감동적이다. 고통을 나누는 임재는 침묵의 긍휼을 통해 이뤄지는 강력한 사역이다. 


임재(함께 있어주는 것)은 약함의 섬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그들의 연약한 부분에서 연약해지고, 그들이 연약해지는 입장에 처하는 것. 그것은 기꺼이 상대방이 당하는 고통을 겪는 것. 그러나 이는 고통당하는 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고통당하는 이가 노출되어 있는 일이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크레이그 딕스트라)




[5. 서언의 목적]


* 산문체 서언은 이 시의 드라마가 일어나고 있는 장면을 설정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1) 1-2장은 모든 고난이 반드시 죄에 기인한다는 견해를 무시한다. "고난이 형벌이라는 개념은 모든 고난의 상황을 설명하는 완전한 해답으로는 타당하지 못하다(존스)"

2) 욥이 삶의 실수를 깨우칠 수 있도록 훈련받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욥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는 '흠 없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이는 욥의 인격이 그의 고난을 통해 정결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배제한다.

3)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분명한 이유 없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 무고한 고난을 더 넓은 배경- 곧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더 큰 구조 안에서 보게 해준다.

5) 사람이 무의식적으로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6. 욥의 애통]


* 그가 겪는 고통은 이제 도리어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 때문이다.욥은 자신의 체험과 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와, 하나님이 품고 있는 하늘의 목적들의 신비에 관해 알고 있는 바가(곧, 하나님에 대한 욥의 지식과 하나님의 방식에 대한 무지가) 충돌하며 참기 어려운 긴장이 존재한다. 


욥은 자기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가 선한 분이라는 신앙 안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 실제적인 삶의 체험에서 하나님이 그의 복지를 염두에 두고 계신지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욥은 자신에게 임한 모든 압도적인 불행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과 접촉하고 있음을 확신하지만, 그것은 이미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분의 부재의 어두움 안에서만 그 임재가 알려지는, 감추어진 하나님이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자기가 하나님과 관게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성격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실은 그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몰고 갔다.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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